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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에너지가 나지 않는다. 매일 사소한 거라도 뭐 하나쯤은 발견을 했고 그에 대해 할 말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각에 그쳤다. 어느 날엔 폴더폰 자판을 누르다 힘이 빠져 작성을 취소하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힘이 안나서 울었다. 본인의 상태를 언어화할 수 없어 아기들은 운다. 아파도 배고파도 졸려도 똥싸도 운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언어화 할 수 없어 그냥 울어버렸다. 다 울고나서야 알았다. 재밌겠다 생각한 게 재미로 느껴지지 않는거라면 에너지의 문제가 확실하다고. 에너지를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래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잘 자고 잘 먹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주었다. 잘 자기 위해서 일단 방에 커튼을 다는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이 계획은 지난 겨울에 세워놓고 여태껏 미룬건데 할 수 있을까. 줄자로 창의 너비를 재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 없다. 에너지 올리기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며 내일 아침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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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바꿈 친구가 기록을 어떻게 하냐고 질문을 던져주어서 오늘은 꼭 발견을 쓰겠다 결심했다. 왜냐면 나의 기록 방식을 소개하며 예시로 오늘 나는 이런 발견을 했고 이렇게 적을거라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발견한 것은 돌담 사이로 핀 봉선화다. 언젠가의 출근길에 집 옆에 핀 봉선화가 하수도 공사로 인해 포크레인에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것을 목격했다. 옮겨심기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봉선화가 있던 자리는 구멍난 시멘트바닥만 남았는데, 오늘 아침. 공사현장 옆 돌담에 봉선화가 붙어 난 것을 발견한 것이다. 포크레인에 의해 더 구석으로 밀린건지, 아니면 포크레인에 흔들리며 새로 번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멀쩡하게 존재해서 신기했다. 버스 시간이 빠듯한 와중이라 그 곳은 바쁘게 지나치면서도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올 여름 꽃잎과 이파리를 빻아 봉숭아물을 들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딱히 관리하지 않아도 매년 여름 길가 그 자리에 나타나던 애들이었다. 아무래도 에너지 올리기 프로젝트의 롤모델은 이 봉선화가 되어야겠다. 더 해야한다는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잘 있는 것. 누가 날 밀어버리려 한다면 바로 옆자리로 슬쩍 밀려나주는 것. 내가 지금 가져야 할 태도가 봉선화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