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일 내려오는거? 응. 나 내일 아침에 바다갈거라서 오늘 집에서 친구랑 잘게이. 바다(라고)? 엄마의 되물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바다에 가는 것이 의외여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친구가 우리집에 자는 것 때문에? 어제 화를 내고 전화를 끊은 다음 하는 연락이어서? 나는 '바다(라고)?' 할 때의 그 억양과 그 역사와 그것을 말하는 엄마의 마음과 그것을 듣는 나의 마음에 대하여 글로 풀어낼 자신이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생각하면 내가 엄마에게 처음 하고싶은 것을 말했던 청소년기로, 하지만 그것보다도 덜 비장하게 하고 싶은 걸 말했을 유년기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가 서울 이모네 집에 얹혀살 때 나도 회식 가고싶다고 울분섞인 목소리로 언니에게 말해보지만 씨알도 안먹히던 시절로, 그보다 더 이전에 손녀인 나에게는 천사같았지만 딸들에게는 엄했다던 외할머니가 남편 없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던 때로, 사실 그보다도 전에 여린 외할머니를 강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척박함의 원인까지 파헤쳐야 하기에 나는 그냥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제 밤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이모가 먼저 집에 와있었다. 도어락에 열쇠까지 이중잠금이 되어있어 이모를 불렀더니 이모는 누구세요? 하고 외쳤다. 나는 저예요! 하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모는 다시 물었다. 누구세요? 이모 저 현지예요! 그제서야 이모는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막차를 타고 왔다는 말에 이모는 막차가 무섭지 않니? 하고 물었다. 막차에 사람이 제일 많아요. 하고 답하며 나는 이모가 밤에 다니는 것과 밤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걸 느꼈다. 엄마는 이모의 반대 때문에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며 한 번도 회식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이모는 한참 어린 동생이 밤늦게 서울을 배회한다는 게 그렇게도 무서웠나 보다. 엄마가 "바다(라고)?" 되물은 것도 내가 바다에 가는 게 무서워서 그랬던걸까? 내가 중학생 때 바다에 빠져 죽을뻔한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나는 다음날 새벽 내가 죽을뻔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넋 드리는 의식을 치렀다. 무당은 나에게 쌀을 던지며 나를 향해 "나가라"고 소리쳤다. 혼자 앉아 쌀을 맞는 게 그땐 정말 이상하고 아프고 당황스러웠는데. 내가 잘못한것 같고. 그런데 그것도 내 안에 무언가가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어른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의식이겠지. 그러고보면 엄마는 평생 바닷마을에 살아왔으면서 바다에 발도 담그지 않는다. '성가셔서'라는 말 뒤에 숨겨진 두려움이 오늘에서야 희미하게 보인다. 엄마와 이모와 외할머니, 그리고 나를 둘러싼 여자들의 두려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두려움을 외면하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막 화가 나다가도 동시에 피를 나눈 두려움이 내 안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걸 느낀다. 왜냐하면 같은 억양으로 나에게 가장 많이 되묻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