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94)

  1. 가족들이 육지에 갔다. 아싸. 오늘은 거실 소파와 텔레비전은 내 차지다. 김치냉장고에 서 맥주캔을 꺼내 시원하게 마시며 영화를 볼까. 자는 사람 신경쓸 필요도 없으니 소리를 키우고 새벽까지 원없이 뒹굴거릴 수 있겠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려고 오늘은 평소보다 집에 일찍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이모였다. 설마. 어제 엄마가 보내온 문자가 허공에 띄워졌다. "내일 이모 집에서 잘거니까 일찍 들어가." 엄마가 육지에 올라가면 보통 서울 이모 집에서 잠을 잤다. 이번에도 그런댜고 했으니까. 그 다음에 오는 말이야 뭐, 맨날 하는 얘기여서 읽고 답도 안했다. 어차피 착실하게 일찍 들어갈 계획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모의 전화에 내가 뭔가 잘못 이해한 것 같다는 예감이 번뜩 들었다. 엄마가 이모 집에 잔다는 게 아니고, 이모가 우리집에 잔다는 얘기구나. 내 달콤한 계획이 한 입 먹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엄마에게 전화해 왜 헷갈리게 이야기했냐고 화를냈다. 엄마는 이모 띄고 집 이라고 분명히 쓰지 않았냐며 이해를 못한 나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이모네 집에서 잔다고 내게 구태여 얘기할 이유가 없었으며, 일찍 들어가라는 말이 이어서 나온데에는 일찍 들어가야하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맥락으로 이해해야 했다는 걸. 그런데도 나는 분해서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씩씩거렸다.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서. 나의 소중한 시간을 뺏긴 것 같아서. 최근 래리에게 글의 맥락을 잘 파악한다는 얘길 들었다. 정말? 하고 물으며 내심 기뻤는데, 맥락은 대상과의 안전거리가 확보되어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욕심이라던가 이해관계가 없을 때라야만. 에휴. 맥락이고 맥주고 소파고 티비고 뭐고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