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89)

  1. 친구가 이준석을 뽑았다고 했을 때, 나 실제로 이준석 뽑았다고 말하는 사람 처음 봐, 하고 말했다. 십년 넘게 알고 지내며 정치얘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건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내가 국가에 간절히 요구하고 싶은 과제가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있거나 아예 순위 밖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린 논쟁 중에도 때론 웃었다. 웃음기가 싹 가시는 순간도 분명 있었으나 서로가 그런 선택들을 하게된 이유마저도 너무나 알겠어서 웃음도 나왔다. 그래도 말했다. 근데 난 이준석이 정말 싫어.

  2. 오늘 독서모임에서 내가 문장을 나눈 책은 '파노라마'라는 이름의 소설이었다. 소설 속 세상에선 모든 건축물의 벽과 담을 유리로 만들어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다수의 시민이 동의한 방식이 이 '투명화'였다. 디스토피아적 설정같지만 현실과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우리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관람하기가 쉬워졌고, 그것을 토대삼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분류한다. 그리고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편입되고 싶어한다. 그런 소속욕구가 소셜미디어의 가장 큰 원료일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사람들의 모든 것을 '보며' 살아야 할 '투명화'된 세상은 그 욕구가 몇 배로 더 커질 뿐이다. 소설 속에선 비슷한 사람들끼리 아예 마을을 이루고 살기 때문에 '함께 살기'가 아닌 '우리끼리 함께 살기'라고 표현한다. 표면적으로는 점점 개방되어 가지만 실은 더 폐쇄적이 되어가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렇다고 나는 안전함을 일부 포기하고 나와 정치적 견해와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흠. 매우 피곤한 일이겠지만 시도는 해보고 싶다. 폭력이 완전 사라진 유토피아란 과연 있을까. 적어도 소설 속에선 투명화된 와중에도 사건은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