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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모른 채 풀밭을 기어가는 아기는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색을 볼까?"-스탠 브래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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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알게 되었다. 이름은 '카메라가 되기'. 방법은 먼저 풀밭에 엎드린다. 아주 잠깐 눈을 떠서 풀을 클로즈업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거나 보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바로 눈을 감는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한다. 그다음 눈을 감은 채 몸을 돌려 드러눕는다. 잠시 눈을 떠서 하늘을 쳐다본다. 얼른 눈을 다시 감고, 같은 동작을 몇 번 되풀이한다. 몸을 앞뒤로 뒤집어가며 클로즈업과 멀리 보기를 번갈아 되풀이한다. 눈의 '셔터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해본다. 자신이 본 것에 수식어(초록, 파란, 흐린, 탁한, 아름다운, 실망스러운)을 붙여 분류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차린다. 생각이나 판단이 끼어들 때마다 눈을 감았다 뜨며 새로고침한다. 이 놀이는 우리가 사물이나 사태에 재빨리 갖다불이는 해석에서 벗어나고, 이해의 단계 전에 휙 스쳐가는 직접적인 지각의 순간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소피 하워스, 마인드풀 포토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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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언가를 보느라 세상의 많은 부분을 보지 못하는 것에 '무주의 맹시'라는 심리학 ㅇ용어가 있다고 한다. 요즘 나도 풀밭에서 다른 건 보지 못하고 단지 '초록'만 발견하고 있는 듯하다. 요즘 텃밭에 잡초도 잘 살피지 않고 빨갛게 익은 열매에만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물 주는 때도 곧잘 놓치고. 집 앞 하수도 공사가 시작되며 포크레인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길가의 들꽃을 다른 곳으로 옮겨준다 생각한 게, 며칠 내일로 미뤘더니 바닥이 산산히 부서진 채 들풀들은 온데간데 없다.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