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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해수욕장 방파제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모서리마다 자릴 잡고 앉아 배달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해는 서서히 바다쪽으로 내려갔고, 해의 위치에 따라 하늘색과 바다색이 시시각각 변했다. 바다 위 한줄기의 윤슬로 해의 몸이 잘게 분해될 때에는 사정없이 반짝이는 금빛의 그것에만 눈길이 가더니. 식사를 마칠 즈음, 바다가 해를 삼켜 세상이 온통 짙은 주황빛으로 물들었을 땐 빛을 빼앗겨 그림자가 된 모든 것에도 다 눈길이 갔다. 한낮의 더위에 겁을 먹고 에어컨이 빵빵한 식당으로 갈 뻔했는데 마음을 고쳐먹길 정말 잘했다. 바닥에 저장된 낮의 열기가 쉽사리 빠지지는 않았지만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와 기분좋게 시원했다. 열대야에 피서나온 사람들을 따라 우리도 얼음장같이 차가운 단물에 발을 담궜더니 온몸이 짜릿하며 더위가 가셨다. 내친김 바지를 더 바짝 걷어올려 맨발로 검은모래 위를 걸었다. 밀려 들어온 바다가 종아리에서 부서졌다. 아직 여름이 한창이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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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가 단물 옆에있는 공중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잔뜩 상기되어서는 화장실에 예상못할 것이 있다고 했다. 바퀴벌레? 아이 너무 예상 가능하잖아. 쥐? 그것도 예상 가능하지. 새? 맞아! 어떵알안?! 근데 그냥 새만 있는 게 아니라 집이 이서! 작고 층고도 낮은데 제비 여러마리가 짹짹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으며 화장실 칸막이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이었다. 직접 보겠다고 일어나니 친구들은 이거 완전 오늘의 발견 감이라고 했다. 가봤더니 정말 세면대 위에 조그만 집을 지어놨는데 머릿수를 세어보니 일곱마리가 되었다. 일곱마리가 들어가기엔 딱봐도 집이 비좁아보였는데 그래서인지 한 마리는 집 밖 계량기(로 추측되는 것) 위에, 한 마리는 칸막이 위에 앉아있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땐 빼꼼 나와있는 얼굴들이 모조리 나를 쳐다보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들이 얼마나 그곳에서 지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