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바덴의 여름'을 읽고 도스토옙스키를 따라가는 화자의 여정보다 수전손택의 서문이더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의 작가 치프킨의 직업은 의사였는데, 하루 루틴에 글쓰기가 꼭 들어갔으며 문학 작품을 몇 편이나 완성했지만 생전에 한 편도 출판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대인 학살을 경험한 그였기 때문에 검열당하고 직장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납득할만 했다. 그래서 작품을 쓰고 나면 아내와 아들, 아들의 친구 한 명에게만 쓴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수전손택은 이런 그를 두고 창고에 처박아두기 위해 썼다는 과격한 표현을 썼다.(이 표현이 맞나 긴가민가하므로 내일 정확히 옮겨적겠다.) 만들고 세상에 내보이지 않았던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 지 상상해 보았다. 애초에 처박아 둘 거였다면 뭐 때문에 썼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오늘 독서모임에서 했더니 래리가 비비안 마이어 이야기를 해줬다. 그도 엄청난 양의 필름을 찍어놓고 찍은 사진을 생전에 한 번도 전시하거나 출판하지 않았다고. 주변 사람들도 보모 일을 하는 줄만 알았지 사진을 찍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마음껏 상상해봤다. 세상에 내보이는 과정이 번거로워 귀찮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싶었을 것이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때의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것보다 쓰고 찍고 창작하는 그 행위 자체를 좋아했을 것이다... 오늘 한 달 간 만든 받은편지함을 오픈했다. 만들 땐 정말 고통마저 즐거웠는데 판매페이지를 만들고 누군가 구매하길 기다리는 상황이 되자 기분이 이상하다. 공들여 보정한 사진을 내걸고 이 상품이 이렇게 그럴듯 하다고 내보이는 것이 낯뜨겁고 숨고 싶다. 한낮에 이해되지 않던 것이 해가 지고나서 절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엔 타인의 시선을 대변한답시고 스스로가 가장 엄격한 검열관이 되는 것이 나를 가장 괴롭게한다. 이것도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보여지는 것과 나만 아는 것을 구분하면 나을까. 그런데 난 죽고 나서 알려지는 것엔 정말로 관심이 없다. 그들도 그걸 예상하며 꾸준히 뭔가를 만들어낸 건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