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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러 가는데 치자꽃 향기가 거리에 가득하다. 언젠가부터 내게 치자꽃 향기는 여름을 상징하는 향기가 되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더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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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볕 좋을 때 샌들을 빨아 햇빛 아래 널어두고 친구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얼마 전 만들어 둔 당근라페를 활용해 김밥을 말았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먹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땡볕'을 친구들에게 들려줄 무렵 바깥에 비가 쏟아졌다. 여름 장마에 여름 노래를 들으며 얼음 잔에 IPA를 따라 마시니 정말 여름같다고 했다. 친구들이 갈 때 우산을 씌워주다가 불현듯 생각났다. 아! 내 샌들! 잠시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차피 빗길을 걸어가야 하니 비에 젖은 건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젖은 샌들을 신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샌들이 내 발 온기에 점점 말라갔다. 하차할 무렵엔 거의 완벽하게 뽀송해졌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걸어 가는 길에, 빗물이 고여 만든어진 물 웅덩이에 발이 빠져 다시 흠뻑 젖었다. 그래도 뭐 괜찮다. 인생이란 이렇게 말리려다 젖고, 말랐다가도 젖는 거니까~ 내일 자고 일어나면 샌들은 또 말라있을 것이다. 샌들은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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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편지를 쓰듯 일기를 쓴다. 어느 날엔 힌지에게.라고 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일기이기도 한 편지를 친구의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내 편지에 대한 답장이 친구의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매달 편지가 내 손을 떠나면 그 이후의 장면은 나의 상상으로 채운다. 봉투를 받자마자 열어볼까? 아님 식탁에 두었다가 여유가 생기면 열어볼까? 내가 고른 음악을 들어볼까? 작은 종이가 휙 날아가 못 들었으려나? 어떻게 읽힐까? 내 이야기에 공감할까? 이런 나의 얄팍한 상상력으론 감히 닿지도 못한 장면들이 요즘 펼쳐지고 있다. 답장이 우편함에 꽂혀있을 때, 힌지에게.로 시작되는 손편지를 받게될 때. 내가 쓰게된 글이 편지 글여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떠들고 있는 게 아니어서 또 다행이다. 이제 더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답장이 나에게 닿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일기를 통해 나에게 답장하고 있겠지, 추천한 음악을 한 곡 반복으로 틀어놓고, 한 자 한 자 소중히 읽고 있겠지,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