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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편지함'을 만들면서 가장 재미있는 과정은 하드보드에 린넨천 붙이기이다. 부드러운 천이 단단한 보드에 착 달라붙으면 직조된 실 가닥가닥이 살아나 바스락거리는 감촉이 된다. 그 표면을 본폴더로 슥슥 쓸어내는 게 기분이 좋다. 어쩌다 보니 천은 세 종류를 쓰게 되었다. 처음 인터넷으로 주황색 천을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원하는 색이 아니어서 시장 린넨가게에서 분홍색 천과 오트밀색 천을 추가로 구매했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니 주황색 천도 단단하고 예뻐서 세 가지 모두 책의 커버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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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천은 두툼해서 제본풀을 막 발라도 보드에 깔끔하게 잘 붙었는데 분홍색 천과 오트밀색 천을 붙일 땐 문제가 있었다. 천이 얇아 제본풀에 천이 젖어버리는 것이다. 젖은 채로 굳으면 얼룩이 그대로 남았다. 그건 정말 용납할 수 없었다. 풀을 뭉치지 않고 얇게 바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너무 찐득해서 두껍게 발리나 싶어 물을 섞어 묽게도 해보고, 붓이 작아서 그런가 해서 넓은 붓도 사보고 스펀지 브러시도 써봤다. 그래도 천이 조금씩 젖었다. 챗 지피티에 물었더니 스프레이형 풀을 추천해줬다. 하지만 '무조건 야외에서 분사하세요. 쓰고 나면 주위가 온통 찐득거립니다.' 라는 쿠팡 후기를 확인하고 조용히 창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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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오늘. 절대로 천이 젖지 않는 필살 방법을 찾았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바르다가 터득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바르는 방식에 있었다. 그러니까 바를 때, 붓에 '적당한' 양의 풀을 묻혀 '적당한' 힘으로 펴바르고 '적당한' 정도로 마를 때까지 결을 바꾸며 쓸어주면 천이 젖지 않으면서도 뜨는 부분 없이 잘 밀착되었다. 이 '적당함'은 그간의 경험이 누적되며 손과 눈에 기록된 정도였다. 누가 그냥 알려준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괜히 우쭐해져서는 도구가 문제라고 했던 챗 지피티에 니가 뭘 알아~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 상상을 했다. 나 스스로도 충분히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거였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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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붙이기가 '받은 편지함'에서 가장 재미있는 과정이라면, 제일 까다로운 과정도 있다. 내지를 연결할 종이를 일정한 너비로 접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조만간 만들다가 답을 저절로 찾아낼 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