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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거장 만큼의 변화

첫 글을 정말 쓰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쓸 말이 없었다. 새로 생긴 깨끗한 나의 공간에 뭐라도 채워 놓고 싶은 마음에 뉴 포스트 버튼을 몇 번이나 눌렀나. 그럴 때마다 한 자도 적지 못하고 나오며 빠짐없이 절망했다. 그러고보니 최근 일기장에도 매일 해야할 일을 적고, 마치면 가위표를 하는 것 말고는 쓴 글이 없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글감을 떠올리려 애쓰다 괜히 울적해지기만한 밤도 여러번이었다.

어제는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 다음 정거장에 내렸다. 놓친 건 아니었고 왠지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넘어간 길을 어슬렁 되돌아오며, 반대 방향의 귀갓길을 오랜만에 걷는다는걸 알아차렸다. 나의 의지로 만들어낸 아주 작은 변화들의 빈자리도 그제서야 느껴졌다. 쓰고 싶은 글이 생겼다.

겨우 한 정거장의 변화가 필요한 거였구나. 서둘러 10시 23분 막차에 오르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막차 직전까지 열중하던 것들, 여러 대화들, 여러 기쁨들이 있었지만 한 정거장 정도의 무언가는 없던 날들. 집에 오자마자 일기장을 펼쳐 연휴동안 혼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나열했다. 이를테면 출퇴근길을 벗어난 노선으로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 정거장에 내려 혼자 밥먹기.

오늘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에 쓰고 남은 탈색제와 산화제를 섞어 눈썹에 발랐다. 시꺼먼 눈썹이 옅어진 걸 거울로 확인하는데 또 글을 쓰고 싶어졌다. 글이란 거, 가만히 생각한다고 쓸 수 있는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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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눈썹 — Feb 9, 2024:

    뭐든 작은 마음이라도 먹어야 하는구만요!

  2. 마음을울리는좋은글입니다 — Feb 9, 2024:

    쭉 정진하세요

  3. 피피 — Feb 9, 2024:

    작은 변화 큰 힘 노선 이탈 아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