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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안경을 살지 고민

약을 먹은 지 한 달이 되었다. 약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금식을 한 채로 병원에 갔다. 결과를 보기도 전에 의사선생님은 약 3개월 치를 추가로 처방해 주셨다. 추가로 이런저런 검진을 마치고 근처 약국에 갔다. 약사님은 처방전을 살피더니 약을 가져다 주시며 인자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많이 걸으세요.”

약국 문을 열고 나오는데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웃겼지? 배가 고팠나?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많이 걸어야 했고 말씀대로 열심히 걸으며 오후 햇살이 꽤 강렬해서 이젠 선크림을 잘 발라야겠다고 생각했다. 햇살이 강렬한 것 치곤 너무 춥다고도 생각했다. 도착하면 당근라페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콧노래도 나왔다. 내가 걷는 내내 미간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건 거의 도착해서였다.

나는 정말 귀찮으면 렌즈를 그냥 끼고 잠드는 버릇이 있다. 귀찮음에 처절하게 진 결과, 다음 날 아침 몸과 마음은 처참해진다. 일단 눈에 눈꼽이 덕지덕지 붙어있고(평소 아침에 생기는 눈꼽 정도는 애교일 수준이다), 눈이 퉁퉁 부으며(밤새 눈에서 렌즈와 수분을 갖고 전쟁을 벌였을 게 예상되는), 잔 것 같지 않게 몹시 피곤하고(눈 뜨고 잔 거 아닌가?), 소중한 내 각막의 수명이 몇 년은 짧아졌을 거란 절망(그럼 왜..)이 범벅진다. 20대 초반에 비해 빈도는 줄었지만 불과 며칠 전에도 이 짓을 또 했다. 그리하여 내 눈은 눈부심에 취약한 눈이 되었다. 그날도 걷는 내내 햇살이 너무 눈부셨던 것이다.

실내에선 투명한데 햇빛이 있는 곳에선 렌즈의 색이 변하며 자외선을 차단하는 렌즈가 있다고 한다. 나에게 딱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제 봄이고, 따뜻해지면 야외활동을 많이 하게 될테고, 게다가 나는 많이 걸어야 하니까. 지금 갖고 있는 안경에 렌즈를 바꿀까? 하지만 나에겐 두 개의 안경이 있는데, 하나는 빈티지 플리마켓에서 사천원 주고 산 파랑색과 보라색이 섞인 투브릿지 프레임의 스포츠 안경인데, 정말 좋아하는 안경이지만 계속 쓰면 안경다리가 양 옆에서 나의 관자놀이를 압박한다. 어린이용임에 틀림 없다. 하나는 친구가 본인은 안어울린다고 준 얇은 티타늄 프레임의 안경이다. 이것도 정말 멋진데 테가 얇아 변색되었을 때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내 얼굴에 맞지 않는지 자꾸 내 코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게다가 오래 쓰면 귀 뒤편이 아프다.

새 안경을 사야할까? 그것이 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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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안경이란 — Mar 8, 2024: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열 개 갖고있눙것

  2. 안경안경 — Mar 11, 2024:

    불편하면 새로 사아죠! 그치만 조금만 더 고민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