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64)

  1. 6월이 되어 창침 아카이브에 이번 달 창작 계획을 적어보는데 저번 달에서 말만 살짝 바꿨을 뿐 내용이 똑같았다. 래리의 다짐 노트가 생각났다. 래리는 새로 태어나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하겠다 다짐하는 목록 써내려가는데, 새로 작성해도 내용은 늘 반복되었다고 했다. 래리와 전 회사를 같이 다니던 시절도 생각난다. 래리가 유독 기분 좋아보이는 얼굴로 출근하는 날에는 누가 묻지 않아도 동료들에게 이렇게 알렸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진짜냐 물으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오늘 1일이잖아요. 제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래리는 그 시절에도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것에 맞춰 마음 속에 다짐 노트를 적어보고 출근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오늘 반복되는 내용을 다짐만 했을 뿐인데 괜히 기분이 좋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얼마 안 돼 월초의 다짐이 희미해 지더라도 1일만은 체크박스를 모두 채웠으니까 생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쓰고 나서 생각난 사실. 내 생일은 정말 1일이다.)

  2. 그저께 친구들이 놀러와서 오랜만에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재생하자 테이프가 엄청나게 늘어지는 소리가 났다. 배터리 문젠가 싶어 새걸로 교체했는데 플레이어 속에 AA건전지를 네개 합친 것 같은 커다란 크기의 건전지가 자그마치 8개 들어있었다. 건전지를 교환하고 센서를 닦아주니 다시 잘 재생되지만, 엄청난 존재감의 폐건전지 8개가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조금 멀리에 있는 재활용 도움센터에 가져갔다. 도착해서 건전지 수거함에 집어 넣으려는데 상주하고 계신 어르신이 우릴 부르셨다. 건전지가 든 봉지를 가져가 무게를 재시더니 2kg가 넘는다며 10L 종량제 봉투를 두 장 주셨다. 평일은 한 장인데 일요일은 두 장 주는 거라고 하셨다. 뜻밖의 행운에 뛸 듯이 기뻤다. 래리는 건전지가 든 봉지를 쌍절곤처럼 돌리다가 맞았을 때의 아픔이 씻기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