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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할 때가 되면 이젠 더 이상 지도 앱에 들어가서 후기를 찾아보며 선생님이 친절한지,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하신 적이 있는지, 손님들이 대체로 만족하고 돌아가는지 비교 분석하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사 년째 다니고 있는 미용실에서는 한 번도 머리스타일 외에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해봐야 "밖에 눈와요!" "그러네요!"가 전부이다. 그럼에도 나와 사장님 사이에는 무언가가 쌓이고 있었다. 가령 나는 사장님에게 "전보다 층을 더 내고싶어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사장님은 이전의 데이터를 기억해내고 찰떡같이 원하는 정도를 찾아주신다. 나는 더이상 사장님 앞에서 핀터레스트에서 찾은 외국인의 사진을 보여주는 게 부끄럽지 않다. 그에 대해 "이건 외국인이고요. 손님 모질이랑 달라서 이렇게 나오긴 어려우세요." 따위의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우린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눈을 마주보며 정성스런 인사를 나누지만 그 외 시간에는 굳이 다른 말이 오가지 않아도 편한 사이가 되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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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년에 처음 방문한 안경점에서 두 번째 안경을 맞췄다. 두 번째 안경이지만 방문한 횟수로 따지면 여섯 번은 된다. 시력 검사를 할 때, 주문한 안경을 찾으러 갈 때, 느슨해진 부분을 조이러 갈 때, 친구 안경 맞추는 거 따라갈 때, 친구 안경 느슨해진 부분 조이러 가는거 따라갈 때, 그리고 오늘 선물 받은 안경테에 알을 맞추러 간 것까지. 그러는 사이 사장님이 편해진 것 같다. 사장님 앞에서 거울에서 눈을 못 떼고, 셀카를 찍어 확인해보고, 심지어 저 어떠냐고 능청스럽게 묻기도 한다. 렌즈의 가격을 맞춰나가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저렴한 선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경계를 늦추고 합의해 나갈 수 있었다. 이것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안경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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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가게가 생기고 있는 게 신기하다. 특히 내가 긴장하고 얼어붙는 두 곳에서. 미용실과 안경원은 시력이 안좋은 내가 앞이 뿌연 채 무방비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자꾸 들여다봐야 해서 그런지 괜히 민망하고 움추러드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날 "어떠세요?" 라는 물음에 "괜찮아요" 라고 하고 문을 나와 좌절했었는지. 그래서 이 두 곳에서 만큼은 꽤 오랫동안 유목 생활을 했었다. 이젠 나의 요구사항을 기죽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안전한 사장님 두 분을 만나게 되어 소통 없는 결과물에 당황할 일 없게 되었다. 두 분 모두를 소개해준 래리에게 무한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