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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가 당근에서 좋은 음반을 찾았다며 들어보라고 했다. 유튜브에 검색했더니 댓글엔 추억이라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과 음원사이트에도 없어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는데 올려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93년도 내가 태어난 해에 나온 앨범이니까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이려나. 어릴적 엄마 모임에 따라간 아이가 된 기분으로 재생했는데 귀가 번쩍 뜨였다. 지금 들어도 실험적이라 느껴지는 곡이었다. 래리에게 마음에 든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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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주신 주소를 찍어 어느 주택가에 도착했다. 곧 아빠 뻘의 중년 남성이 lp판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거래 물품을 건네며 좋은 음반인데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개봉하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쩐지 우리가 이 음반의 주인이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래리가 계좌로 돈을 송금하는 동안 나는 그에게 lp로 음악 듣는 걸 좋아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는 들어가서 틀어드릴까요? 했다. 우린 눈빛을 한 번 주고 받고 같은 마음이라는 걸 확인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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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옆에는 같은 담벼락을 쓰는 미닫이문이 하나 더 있었다. 아마 밖거리로 들어가는 문인 듯했다. 문 앞에는 택시가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평소에 택시 운전을 하시고 오늘은 쉬는 날이라 하셨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입구에서부터 처음 보는 음향 장비와 턴테이블,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스피커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작은 싱크대 앞엔 lp판들이 가득 세워져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 것이 된 음반의 먼지를 수건으로 슥 닦아 전축에 올리고 동그란 추를 턱 올려놓았다. 크고 풍부한 음향으로 첫 곡이 재생되었다. 우린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열린 미닫이문으로 음악이 골목 전체에 퍼져나가 저 항구에까지도 닿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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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더 좋은 건 안에 있다며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이부자리를 대충 접어 방 구석으로 몰아넣고 cd를 재생했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나도 모르게 방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 아저씨는 내친김에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디제이처럼 다음 재생할 음반을 신중히 골라 두 곡 정도 더 들려주었다. 여전히 모르는 노래였고 마지막 곡은 무려 힙합이였다..! 볼륨이 엄청 큰데도 날카롭지 않고, 작은 방을 가득 채우다 못해 심장이 둥둥 울리는 게 마치 음향시스템이 좋은 공연장이나 페스티벌 맨 앞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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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해하는 우리에게 아저씨는 이런 걸 들을 땐 공간도 크고 넓으면 더 좋을텐데 방이 작다고 민망해 하셨다. 그러면서 듣고 싶으면 또 와도 좋다고 했다. 우린 당근 채널에 올라오는 음반 계속 구경하겠다고, 다음에 또 뵙자고 인사를 나누고 챙겨주신 빵과 주스, 그리고 삶 사람 사랑을 끌어안고 문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