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라는 말 대신 "해봐"라는 말을 듣고 자랐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안된다는 대답을 15427894번째 들을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내가 마음 졸이며 꺼내는 말은 백이면 백 다 그 대답이었다. 외박, 여행, 퇴사, 창업, 독립, 비혼. 반대에 맞서는 투쟁의 역사는 십대 때부터 지금까지 끝도 없이 이어져오는 중이다. 오늘은 내가 하려는 건 다 안된다고 하려는 거냐고 물었다. 시집가면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통이 터져 방문을 닫았다. 그러다 어제 본 칼럼 하나가 떠올랐다. 윤석열과 눈물의 포옹을 하며 화제가 된 극우 청년의 부모가 고위층 진보 부모였다는 이야기였다. 그 청년은 부모에 대해 "평등을 말씀하시지만 본인의 자녀들은 어떻게든 엘리트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를 거스르면서 성장하는 거라던데, 정말 부모의 모순점이 자식의 방향성에 영향을 준 것이다. 어쩌면 나는 부모가 나에게 평범한 삶을 강요한 덕에 남들처럼 살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거라면 나는 오히려 감사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나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으며,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므로. 반대를 무릅쓴 것들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맞다. 관성에 의해 꺾이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