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41)

  1. 아침에 버스 기사에게 쌍욕을 들은 이야기를 적다가 다 지웠다. 내가 아무 잘못이 없었음을 설득하려는 것 같아서 싫었고, 쌍욕을 옮기는 부분에서 혈압이 순간적으로 올라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물 안받으면 그만인건데 나는 한동안 심장까지 뛰어가며 기꺼이 받아버렸다.

  2. 친구와 두 시간 넘게 통화했다. 폴더폰 키패드가 불룩한데 이거 괜찮은건가? 친구는 회사를 다니며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데, 점심 시간에도 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도 독서실에 가고, 주말에는 학원에 간다고 했다. 일과 공부밖에 없는 일상이라 힘에 부쳐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작은 일탈을 하고있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는데 그렇게 대리만족이 되더라고 했다. 위스키 한 잔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끔 말없이 기분좋은 순간을 사진 찍어 보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잠시 떠올려봤다. 오늘이라면 어떤 사진을 찍어 보낼까. 골목을 가득 덮은 신비로운 안개, 오늘 만들어 먹은 들깨 깻잎 파스타, 텃밭에 핀 이름 모를 분홍색 꽃, 벌써부터 가지마다 맺힌 작은 무화과들, 오늘 만들고 꽤 마음에 드는 위빙 책갈피, 자유연구도감, 걸쭉한 막걸리... 쌍욕으로 시작된 하루였어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너무 자신 있었지만 친구에게는 몇 번이나 되물었다. 대리 만족이라는 게 가능한건가? 언젠가부터 나는 직접 경험한 게 아니면 만족이 잘 안 된다. 걱정말라고 하는 친구에게 나는 신신당부했다. 혹시 내 기록이 너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면 꼭 말해달라고. 나부터가 조심해야겠지, 행복이 자랑이 되지 않게 조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