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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집에서 푹 쉬었다. 어디 움직이거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몸의 회복에만 전념했다. 이따금씩 창밖에 눈보라가 치는걸 보는게 가장 큰 자극이었다. 어젠 혼혈왕자를, 오늘은 죽음의 성물을 영화로 보며 짧은 낮잠도 잤다. 소설을 읽고 일부러 몇주의 시간차를 두고서 영화를 봤는데도 아는 내용의 반복 혹은 요약인지라 잠이 쏟아진다. 낮잠에서 깨면 화면에선 계속 부서지고 깨지고 있고 창밖엔 무섭게 눈발이 날려 현실감을 찾는데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보라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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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기침을 해대며 거실 소파에 꼼짝없이 누워 평소 볼 일이 없던 tv프로그램들을 봤다. kbs제주방송에서 배우라고 소개하는 국밥집 사장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라디오에 그렇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했다. 30년 전 보낸 편지로는 서울 방송국에도 초대되어 다녀오시기도 했는데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어느날 국밥집에 첫손님으로 20년 장기 복역수가 출소 날 찾아왔다. 그 얘길 듣자마자 손님의 손을 잡고 잘 오셨다고 말하며 맞아주었다. 편지에 그를 '귀한 손님'이라고 부르며 따뜻한 세상에선 그 손님도 잘 살아가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첫 손님부터 귀한 손님이 온 덕에 그날 장사가 더 잘되더라고도 했다. 사장님이 배우가 된 사연은 처음부터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사장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와 편지글의 형태로 잘 기록해두시는 분인건 확실했다. 그걸 재미있게 꺼내시는 장면만 보더라도 멋진 배우이자 스토리텔러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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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작가의 노벨상 시상식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또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 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어떤 내적인 힘이 생기게 되죠. 그래서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서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어떤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을 잃어간다고 느낄 땐 읽거나 쓰지 않고 화면만 들여다보며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때였다. 영상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문학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터치패드가 들뜬 폴더폰으로 손톱에 힘주며 옮겨적었다. 퇴근해서 같이 다큐멘터리를 보던 엄마는 나에게 한강작가 책을 다 읽었냐 물었고 나는 자신있게 답했다. 어렵지 않냐기에 충분히 읽을 수 있을거라 말했고 엄마에게 소년이 온다 부터 빌려주기로 했다.
터치패드 많이 들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