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124)

  1. 아침에 알람도 없이 깰 때가 있는데 거실에서 아빠가 기타연습을 할 때다. 아빠가 연주하는 음악은 김광석 유재하보다는 오로지 트로트 뿐이다. 화음따위 없이 정직한 멜로디를 짚어내며 연주하고, 멜로디가 없는 구간은 쿵 짜자 쿵짜 네박자 리듬을 넣어 트로트 감성을 살린다. 그래서 모든 노래가 네박자처럼 들린다. 니가 기쁠 (때)(쿵 짜자 쿵짜) 내가 슬플 (때)(쿵 짜자 쿵짜) 누구나 부르흐는 노(래)(쿵짜 쿵짜 쿵짜자 쿵짜) 가끔 아는 트로트 멜로디가 나오면 잠에서 서서히 깨며 속으로 따라부르게 된다. 가끔 지겹긴 하지만 언젠가는 그리울 멜로디라고 생각하면 연습을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친애하는 영농회원 여러분, 하고 시작하는 아빠의 우렁찬 연설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깼다. 처음엔 녹화한 영상을 재생하는 건가 싶었는데 듣다보니 라이브였다. 한 문장 한 문장 끊어서 또박또박, 크고 정확하게 외치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다. 그러다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연설을 마치지 못한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몇달 전 마을 농협의 영농회장에 취임한 아빠는 은퇴 후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친구가 아닌 어색한 사람들과 술을 먹다가 평소답지 않게 과음해서 비틀비틀 집에 들어오질 않나, 이번 설에는 설인사를 돌려야 한다고 새해 인사 멘트가 다양하게 있는 카톡 이모티콘을 사달라고 했다. 영농회에서 사용한 비용을 정리하고 있으면 부녀회장을 오래 했던 엄마한테 이런식으로 하면 되냐고 혼나는 모습도 자주 봤다. 언젠가, 회사를 다니면서 각종 모임에 부녀회 일까지 하느라 바쁜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 부엌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엄마는 사회적인 반면 본인은 그렇지 못하다며 엄마가 멋있지 않냐고 내게 물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아빠는 엄마가 바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으며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연설 연습을 한다고 목을 가다듬고 내는 소리가 좋았다. 비록 내 잠은 다 날아갔지만. 영농회장에 취임했다고 수줍게 말했을 때 그게뭔데? 하며 시큰둥하게 반응한 걸 반성하며 오늘 집에가면 연설 잘 했냐고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