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강렬한 향이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어? 이 향은...... 서울로 올라간 첫 해 가을에 동생과 한남동에서 만났다. 만나러 가는 길에 이태원 러쉬 매장에 들렀다. 동생에게 당시 유행하던 더티스프레이를 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정하고 들어갔기에 제품을 바로 골라 들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상냥한 직원이 내 손을 거품내어 씻어주고 있었다. 씻은 손에 향기나는 것들을 종류별로 발라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미는 것마다 킁킁 향기를 맡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리액션을 했다. 오~좋다아~ 이거 특이하다~.. 내 손엔 이미 살 것이 들려있었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는 내 취향을 이미 파악했다는 듯이 딱 좋아할만한 향이 있다고 향수 코너로 데려갔다. 그것만 맡아보고 계산하고 나가야지..생각하며 따라갔다. 그 향수의 이름은 러브. 러쉬 창립자가 아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만든 향이라고했다. 호기심이 생기는 찰나, 그는 나의 한쪽 팔에 향을 칙 뿌려주었다. 사랑은 내가 빠졌나. 평소 향수를 뿌리지도 않으면서 홀린듯 구매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대용량으로. 극진한 서비스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것도 없지 않았겠지만, 처음 그 향을 맡자마자 홀딱 반해버린 것은 분명하다. 서울에 있는 동안 나는 드물게 아침에 여유있는 날 그 향수를 뿌렸다. 매일 집과 직장만을 오가며 나를 점차 잊어가던 코로나 시절이었다. 향기를 입고온 날엔 마스크를 뚫고 독특한 향기가 코로 들어오며 내 몸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그런 날에는 기분의 세팅값이 다르게 설정되는 것 같았다. 향수는 남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향을 제일 가까이서 맡는 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엄마는 거실에서 드라마를 틀어놓고 생강을 다듬고 있었다. 생강청을 만들어 차를 끓여먹을 거라고 했다. 그래, 생강. 그 향수에선 생강냄새가 났다. 방에 들어가 반도 못쓰고 사용기한이 지나버린 향수를 오랜만에 꺼냈다. 뚜껑을 열어 입구에 코를 갖다댔다. 그때의 기억들이 칙 하고 분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