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잠을 푹 못자서 어젯밤엔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잤다. 그렇게 열두시간을 잤다. 래리 전화가 아니었음 더 잤을 것이다. 래리가 오늘 눈도 오고 요새 쉬지 않고 출근했으니 오늘은 집에서 쉬라고 했다. 오늘 하기로 계획한 일들이 있어 망설이는 척했지만 마음 속으론 하루쯤 미루는 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렇게 꿀맛같은 휴일이 시작됐다. 그래서 오늘 한 건 그대로 누워있는 상태로 폴더폰에 북마크해둔 언론사 돌면서 새로 올라온 기사 확인하기. 어슬렁어슬렁 부엌에 가서 냄비뚜껑 하나씩 열어보기. 카레가 삼일만에 끝났을 리 없는데..하다가 냉장고에서 카레 찾기. 거실 티비를 틀고 나혼자산다 보면서 김치에 카레먹기. 채널을 돌리다 볼 게 없어 무료 영화에 올라와 있는 영화 한편 골라 보기. 미뤄둔 설거지하고 방에 들어와 온수매트 틀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기. 책을 펼쳤으나 한장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잠들기. 두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시간 애매해지기. 그러다 지금이 됐다. 천장을 보며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일로 미룬 일의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다가, 며칠 전을 수치스러워하다가, 오늘 들은 소식을 되뇌어보다가,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불 속에서 벗어나긴 싫어서 블로그를 열었다. 사개월 만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뱉고 싶은 말이 여기 쓰기엔 좀 무겁다고 느껴졌다. 가볍고 산뜻하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발견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다. 그러면서 내 일기장이 무거워졌다.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꺼내기보다 내 안에서 오래 굴리며 소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얘기도 있는거니까. 소화가 되기 전에 편지에다 슬쩍 꺼내본 이야기도 있었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그 얘기가 괜히 신경쓰이는 걸 보면 아직 소화가 덜 되었구나 싶은 얘기. 그런데 편지를 받은 익명의 수신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글에서 느껴지는 부끄러움이 좋았다고. 애틋하게 읽었다고. 오늘 전해들은 그 말에서 뭐라도 쓰고싶다는 마음이 생겼는 줄도 모른다. 무겁든 가볍든, 하루종일 보다 먹다 잤다는 얘기든, 다행이어서 눈물이 났다는 얘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