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108)

  1. 손톱에 꽃물을 들였다. 집 옆 돌담에 자라있는 봉선화 한 그루에서 꽃잎과 이파리를 따다 챙겨간 지퍼백에 한가득 담았다. 버스를 탔더니 식물이 머금은 수분에 지퍼백 안쪽이 뿌얘져서 입구를 잠시 열어두었다. 개미 한 마리가 봉지를 빠져나와 버스 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꽃잎들을 일일이 쟁반에 널어놓고 얼떨결에 먼길 온 개미들을 내보내주는 일이었다. 개미들을 제외한 꽃잎들을 다시 지퍼백에 넣고 명반을 조금 넣어 와인병 바닥으로 콩콩 찧었다. 봉지에 작은 구멍들이 생기며 주황색 물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익숙한 향이 났다. 밤에 손톱 물들이던 냄새. 어릴 때 손가락에 랩을 감고 잠자리에 누우면 평소와 다른 손끝의 감각에 잠이 잘 안왔다. 빨간물이 새어 이불에 묻을 것 같아 불안했다. 그때 나던 냄새. 짓이긴 풀냄새보다 더 이상한 냄새였는데 그 냄새가 나서 반가웠다. 래리의 도움을 받아 손톱 위에 초록 덩어리를 얹어 열손가락을 모두 봉인했다. 손가락을 내내 신경쓰며 혼자 영화를 한편 봤더니 외출했던 래리가 돌아왔다. 우린 한 손가락씩 랩을 위로 벗기며 결과를 확인했다. 손톱은 진한 주황색으로 물이 들었다. 손톱 주변에 살까지 물이 들어 얼룩덜룩했다. 물이 든 손톱과 살은 물티슈로 닦아도 비누를 묻혀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양념치킨을 손으로 집어 정신없이 먹고 난 뒤의 손가락같다. 근데 그 손으로 로션을 바르고 휴대폰 자판을 누르는. 자꾸 손가락을 모아 관찰하게 된다. 그땐 살갗까지 붉게 물든 모습이 창피했던 것 같다. 지금은 웃기고 아름답다. 주황색 손톱끝이 조금씩 깎여나가며 주황색 영역이 점차 줄어드는 걸 아쉬워할 가을이 벌써 보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발가락에 물을 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