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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 앞유리 전광판에는 보통 단체명이 적혀있는데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내 앞을 지나간 관광버스 전광판에는 '집가는중~' 이라는 글자가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집 가는 길에 기사님이 바꿔놓으신 걸까? 승객이 모두 내린 후 좌석의 불을 전부 소등한 채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기분좋게 퇴근하고 계실까? 물결까지 완벽하게 귀여웠던 전구로 만들어진 오늘의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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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규칙을 정했다. 11시부터 3시까지 적어도 네시간 동안은 스마트폰 없이 해야할 일에만 집중하기. 밥 먹을 땐 영상보지 않고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놀 땐 노는 것에만 집중하기. 자꾸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려고 해서 정한 규칙이다. 저녁으로 어제 수확한 바질로 만든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먹었다. 보던 영상을 끄고 파스타에만 집중했더니 그 맛과 면의 식감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렇게 하나씩 꼭꼭 씹어먹은 하루는 어쩐지 속도 편하다. 오늘은 한 정거장 더 가서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 걷는 동안엔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에만 집중하려고 했는데 귓속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밤공기도 아주 조금 선선해진 것 같다. 여름 과일을 원없이 먹었나? 여름 바다에 원없이 뛰어들었나?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면 이렇게 꼭 아쉬운 마음부터 든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아무것도 못한다. 초조할수록 한걸음 한걸음 꼭꼭 씹으며 걷는다. 여름 지나면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을 것이다. 그렇기엔 아직 여름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