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102)

  1. 귀가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슬리퍼들 위로 수박이 놓여있었다. 근데 그 수박이 너무 매끈하고 머리 위 센서등이 하얗게 반사되어 수박보다는 수박모양의 비치발리볼 같았다… 혹시나 해서 발끝로 스윽 밀어봤는데 이건 정말 수박이 맞았다. 요즘 매일 퇴근하고 방에 가방을 벗어던지자마자 하는 일은 수박먹기다. 냉장고엔 엄마가 미리 썰어서 밀폐용기 안에 테트리스처럼 쌓아둔 수박이 세통 있다. 엄마가 가장 달콤한 수박이 든 통을 일러주면 나는 냉장고에서 통째로 빼와 자리를 잡고 한 조각씩 뽑아먹는다. 테트리스 게임에 나오는 그 빨갛고 길쭉한 막대같은 수박조각을 먹을 때 나는 좀더 새빨간 쪽을 포크로 찌른다. 당도가 농축된 곳을 마지막에 먹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맛있는 걸 나중에 먹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몇 조각 집어먹고 나면 물배가 차서 너무 많이 먹지는 않게 된다. 그제서야 열대야에 기진맥진해진 몸과 마음은 평정을 되찾는다. 현관에 비치발리볼같은 수박이 한통 더 남아있어 다행이다.